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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_책

결혼.여름-알베르 카뮈

gunhee's 2024. 10. 9. 14:43

목차



    책소개

    알베르 카뮈가 1939년에 집필한 서정적 에세이. 지드의 <지상의 양식>, 장 그르니에의 <섬>과 더불어 프랑스 지적 산문집의 3대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힌다.

     

    "시지프가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저 산꼭대기에서 되돌아 내려올 때, 그 잠시의 휴지의 순간이다. (...) 나는 이 사람이 무겁지만 한결같은 걸음걸이로, 아무리 해도 끝장을 볼 수 없을 고뇌를 향해 다시 걸어 내려오는 것을 본다. 마치 호흡과도 같은 이 시간, 또한 불행처럼 어김없이 되찾아오는 이 시간은 바로 의식의 시간이다.

     

    그가 산꼭대기를 떠나 제신의 소굴을 향해 조금씩 더 깊숙이 내려가는 그 순간순간 시지프는 자신의 운명보다 우월하다. 그는 그의 바위보다 강하다. " (p182)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읽는 내내 나는 카뮈를 생각했다. 그가 말하는 부조리의 감성과 추론, 그에 따르는 결론을 생각하기보단 한 사람의 존재에 대해 말이다. "당신은 강한 사람이니 솔직하게 말하겠소. 당신은 이제 곧 죽게 됩니다. "라는 말을 17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접했던 카뮈는 이제 막 삶을 시작하려고 할 때 죽음을 대면해야 했다. 그에게 주어진 세상은 마치 그의 태양처럼 희고도 검은빛의 세상, 아름답지만 무심한 세계였으리라 짐작된다. 다소 비장한 어조로 부조리에 대해, 어떤 정신으로 살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 말하고는 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그 안의 번민들이 느껴졌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 머릿속엔 그동안 읽었던 카뮈의 글들이 웅웅 거리는 느낌이었다. 어느 페이지를 읽을 땐 부랴부랴 「이방인」을 펼쳐 보기도 했고, 어떤 문장은 「결혼·여름」으로 달려가게 했으며,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안과 겉」을 다시 읽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카뮈는 늘 한결같은 말들을 했다. 그 아름답고 단단한 문장으로 서로를 조명해주며 말이다.

    카뮈에게 '희망'은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어떤 비약이나 도피, 체념을 의미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바위의 무게에서 고개를 돌리고 다른 곳을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감당해야 할 몫이라면 그에 반항하고, 자유를 획득하며, 열정을 다해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카뮈가 말하는 반항이나 자유는 부조리에서 벗어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체념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 마지막엔 죽음이 존재하기에, 인생에 의미가 없으면 없을수록 더 훌륭히 살아야 할 가치가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그 이상한 사막은 자신의 목마름을 기만하지 않은 채 사막 속에서 살아갈 능력이 있는 사람들만이 아는 사막이다. 그때서야, 오직 그때서야 비로소 사막에서는 서늘한 행복의 물이 여기저기 솟아나게 될 것이다. " - 「결혼·여름」 (p69)

     

    카뮈가 다른 산문에서도 종종 언급하는 '사막'이란 단어는 어떤 정신적인 장소를 말하는 것으로, 사유가 극한에 도달하는 물 한 모금 없이 황량한 장소를 뜻한다. 아마도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알고, 주어진 운명을 직시하며 명철한 의식을 유지하는 정신을 말하는 듯싶다.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는 회피하려 하면 할수록 더 무겁게 짓누르기 마련이다. 이 세계는 부조리하다는 것이 유일하게 말할 수 있는 진실이라면 그 부조리를 정면으로 인식함으로, 오히려 자유와 열정을 찾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어차피 시지프의 바위는 그의 것이기에, 산에서 내려오는 행복한 시지프를 그려볼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세상에는 자기의 운명을 똑바로 마주 바라보기를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 - 「안과 겉」 (p63)

     

    카뮈의 고향은 태양과 바다가 있는 곳, 자연의 사치와 정신의 사막이 공존하는 곳이다. 매일의 아침은 처음인 듯 다시 태어나며, 어둡고 광막한 밤은 가차없는 고독이다. 자신의 운명을 똑바로 마주 볼 수밖에 없는 곳, 그곳에서 삶에 대한 그의 사랑이 솟아난다. 물리적인 환경은 다르지만 어쩌면 내 정신의 고향 역시 카뮈와 같은 곳인가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인지 카뮈를 읽을 땐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진짜 이야기들이 마구 쏟아져 나올 것 같아 한동안 마음을 추스르게 된다. 나에게 들려주는 나의 이야기는, 아니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아직은 너무 아프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뮈의 글은 그 단단한 어조에도 불구하고 나를 울린다.

     

    카뮈가 말하는 세계엔 내세가(종교적인) 포함되어 있지 않다. 오직 우리가 몸으로 증명할 수 있는 이 세계에 대해서만 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세나 어떤 관념으로 도피하는 것을 그는 희망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가끔 그런 희망을 꿈꾼다. 다행히 아직은 체념하는 법은 모르지만, 어떤 두려움, 극단의 공포 앞에선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어떤 신을 향해서든 간절히 기도하게 되니 말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행복을 주고 싶은 단 하나의 열망, 그것이 희망이든 도피이든 회피이든 무엇에든 매달려보고 싶은 그런 감정, 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나는 오히려 사랑을 배운다.

     

    "삶에 대한 절망 없이는 삶에 대한 사랑도 없다. " - 「안과 겉」 (p91)

     

    지금껏 살아오면서 배운 단 하나의 진실은 사랑과 고통은 하나라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에서 고통이 생겨나고, 그 고통이 있는 곳에 나의 사랑이 있다. 이 부조리한 진실을 나는 이제야 명확히 쓰고 있다. 하지만 카뮈는 「안과 겉」을 쓰던 당시인 22살 무렵 이미 이 말을 하고 있다. 카뮈는 1958년 「안과 겉」을 재출간하며 다시 쓴 서문에서 "인생 자체에 관해서는 지금도 <안과 겉>에서 서툴게 말한 것보다 더 많이 알지는 못한다. "라고 말한다. 카뮈의 저작을 더러 읽고 난 후 다시 읽는 「안과 겉」의 서문은 이상할 만큼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자신이 판단하기엔 서툰 그 글들을 다시 읽으며 카뮈는 '그래, 바로 그거야'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가난하고 고독했지만 충만한 사랑, 쏟아지는 햇빛, 그 안에 이미 자신이 찾고 있던 진실이 있었다고 말이다.

     

    카뮈의 원천은 「안과 겉」에 묘사한 가난과 빛의 세계이고, 그곳엔 사랑하는 어머니의 침묵이 있다. 장애를 지니고 있어 생각도, 말도 서툰 그의 어머니는 그녀 앞에 놓인 세계의 무심함과 고독 앞에 그저 무거운 침묵을 드리울 뿐이다. 그리고 카뮈는 그 침묵에 어울릴 수 있는 정의, 사랑을 찾겠다고 다짐한다. 그 결과물이 되었을 「최초의 인간」은 카뮈의 죽음으로 미완에 머물렀지만 다듬지 못한 진솔한 목소리가 묻어있어 더 빛이 난다. 단순히 완성을 시키지 못한 것이 아니라 쓰다 만 초고일 뿐인데도 묵직한 감동이 있다.

     

    "맞아요. 난 인생을 사랑했어요. 탐욕스러울 정도로. 그리고 동시에 인생이 끔찍스럽고 접근 불가능한 그 무엇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그게 바로 내가 인생을 믿는 이유예요. 회의주의 때문에. 그래요, 나는 믿고 싶어요. 살고 싶어요, 항상. " - 「최초의 인간」 (p44)

     

    카뮈의 반항, 자유, 열정은 '사랑'과도 일맥상통한다. 더 많이 살고 사랑하며 자신의 삶을 소진하는 것, 인간을 포기하지 않는 것, 개개인을 소중히 여기며, 동시에 함께 가자고 외치는 것이다. 그것만큼 더 강한 반항과 자유, 열정은 없지 않을까.. 내가 알고 있는 답도 오직 한 가지뿐이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것, 남김없이 사랑하고, 부족한 만큼 더 넓은 가슴을 만들어 또 사랑할 것.. 이 부조리한 삶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반항은 그것밖엔 없다고, 나는 행복한 시지프가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행복이 구태여 낙관론과 불가분의 관계여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 행복은 사랑과 관계있는 것일 뿐 ― " - 「결혼·여름」 (p65)

     

    "우리는 찢어진 것을 다시 꿰매야 하고 이토록 명백하게 부당한 세계 속에서 정의가 상상 가능한 것이 되도록 해야 하며 이 세기의 불행에 중독된 민중들에게 행복이 의미 있는 것이 되도록 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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